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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과 복음을 자유롭게 함 (증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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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과 복음을 자유롭게 함 (증인)

멕시코 속에 작은 한국 2021. 1. 9. 16:43

5과 복음을 자유롭게 함 (증인)

예수님으로부터 위임령을 받은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증인이 되었습니다. 보고 들은 것들을 공개적으로 담대하게 증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은 열방이 예수님을 예배하는 것을 위해 살기로 의도적으로 선택한 사도적 열정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모든 민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사도행전 15장에서 복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초대교회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확장된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운동 - 국지적으로 예수를 따르던 것이 전세계 운동이 됐다. ,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즉 예루살렘이나 유대지역에 있었던 사람들이 전세계 모든 나라, 모든 족속 가운데 확산되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 사도행전의 사도들이 세 가지 방식으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큰 그림에 대한 비전 안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함 :비전. / 하나님 나라의 더 큰 목적 즉,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 하나님의 목적을 지속적으로 추구 했기 때문에 전세계로 확산 될 수 있었다. 공적 증거에서의 담대함 : 증인, 고난 /죽음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신실하게 복음의 돌파를 가속화시킴: 유대인 중심에서 이방인으로 유대의 경계 넘기 /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비본질적인 문화에 방해되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신실하게 도왔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했던 증인을 통해서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신실하게 확산될 수 있었다.

예루살렘 공의회 = 우리는 사도행전 15을 통해서 복음이 어떻게 자유롭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신약교회의 위기는 문화적 충돌이었다. 초기의 복음 전파는 전적으로 유대 공동체 내에서만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이방인들이 복음을 영접합으로 율법과 전통을 지켜야 한다면서 박해하자, 예루살렘공의회가 열리고 복음, 즉 예수님의 우주적 영광과 유대교회 문화나 율법과는 별개라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구원은 율법과는 별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게 됨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복음과 문화의 구분으로, 모든 이방 민족 문화 속에 복음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에 문제가 된 것은 복음의 순수성과 기동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열방을 위해 믿음의 문을 여셨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는 두 가지 과업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영광과 문화적 방식을 구분하고 적응하는 일.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문화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의 복음은 유대문화에 묶여 있었으나, 그 문화를 놔주니까 복음이 자유롭게 됨과 마찬가지로. 상황화의 문제 : 메시지를 전할 때는 상황에 맞게 전해야 하고, 토착화의 문제 : 기독교가 점점 확산되기 위해서 그 문화에 토착화 될 수 있게 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 두 문제를 풀어야만 복음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을 사도들이 깨닫게 됨. 그 결과 복음이 유대문화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모든 이방인들이 그들의 문화 안에서 복음을 자유롭게 듣게 되었다. 복음이 자유롭게 되었다.

★스티븐호돈은 선교과업을 두 부분으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복음을 이해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문화적 장애물, 이해의 장벽, 의사소통의 벽을 넘어야 한다. 복음을 소통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써서 복음을 듣게 하고, 자신의 문화 안에서 이해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의 교회를 세우게 해야 한다. 복음을 수용하는 사람이 넘어가야 하는 문화적 장애물이 협곡이다. 그들의 방식대로 예수를 믿게 해야 한다. 영접하지 못하게 하는 수용의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바울의 권면은 그들처럼 되라는 것이다. 선교사는 그들처럼 되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방법을 다하여 그들 중에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다. 그들의 방식으로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 선교할 때 우리는 성경을 읽고 그들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복음이 그들의 문화에서 자유롭게 역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일=복음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고, 그것이 선교사의 역할이다.

==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두 가지 원칙을 이야기 한다. 같이 되고 그대로 지내게 하라. 같이 된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서 피복음자와 똑같이 되는 것, 그대로 지내게 하라는 것은 복음을 수용한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를 떠나서 믿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에 지내면서 주님을 믿는 것을 말한다.

교회의 이중 구조 : 모달리티(회중중심, 양육중심, 목양중심)소달리티(과업중심의 선교단체). 안디옥 교회가 파송했지만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팀을 만들어 독립적으로 전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함. 모달리티는 교회 구조를 말하고, 소달리티는 선교단체 구조를 말한다. 주님의 선교 명령을 성취하기 위해, 두 가지 구조 모두 존재해야 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일해야 할 필요가 있고, 잘 협력해야 세계 선교 확장이 일어난다. 교회가 선교하지만 선교 때문에 교회가 생긴다. 선교를 안하면 교회가 안 생긴다.

사도는 보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사도적 열정은 열방이 예수님을 예배하는 것을 위해 살기로 의도적으로, 고의로 선택하는 것이 사도적 열정이다. 온 세상이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지닌 자질, 예수님의 영광을 전파하기 위해 죽기까지 헌신하는 것이 사도적 열정이다. ‘열방이 예수님을 예배하는 것을 위해 살기를 의도적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의 삶을 살 때 고난이 있고 그 때 열정이 생긴다.

사도적 열정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 사도적 포기 : 보내심을 받은 자는 열방이 예수님께 나오게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가 영광을 얻을 수 없다. ②사도적 초점 : 보내심을 받은 자의 초점은 복이 되어 열방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일어나는 것이 목적이다. ③사도적 기도 :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의 기도를 해야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선교사역은 열방을 위한 기도회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④사도적 의사 결정 :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결정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는 길이다.

선교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고난과 순교가 있을 때, 우리는 복음의 문이 닫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보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고난이 있다. 고난과 순교는 우리가 악에게 지는 것이 아니고, 사탄에게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가 승리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것이다. 순교자들이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할 때 사탄이 패배하고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순교는 하나님 확장을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진짜 위기는 ? 내재된 위기, 그리고 중대한 전환점

지리적 확장?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 /// 이것은 지리적 확장이 아니라 문화적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로부터 가까운 문화에서 먼 문화로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을 예수님이 말하셨다. 선교는 문화적 확장을 의미한다. 초대교회의 진정한 위기는 고난이 아닌 선교의 문화적 이해 결핍에 있었다. 사도행전 1~7장 복음은 유대인만 들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 : 유대인인데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 유대교 개종자 :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헬라인. 사도행전 6-초대교회의 갈등은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의 갈등이 주요인이었다. 초대교회 내 분쟁의 시작은 언어의 문제. 의사소통의 문제. 8-고난이 오면서 성도들이 흩어짐. 사도바울이 등장하면서 처음으로 이방선교의 문이 열리기 시작. 초대교회는 유대 공동체였다. 9장에서 사울의 회심/이방선교를 준비시키심. 10장에서 처음으로 제자들이 이방인들을 만나기 시작.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나는 사건. 1119절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안디옥에서 헬라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최초의 이방인들에 의한 교회가 생겼다. 12장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 13장 이방교회 안디옥교회가 최초의 선교사(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함 14장 바울의 1차 전도여행과 소아시아의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다. 유대인 기독교 공동체와 헬라인 기독교 공동체의 대립이 있었는데, 이 위기를 지혜롭게 해결한 중대한 전환점이 예루살렘 공의회 사건입니다. 사도행전15

예루살렘 공의회 (사도행전15)

{거짓 복음 = 예수 믿으면 유대인처럼 되야 한다는 것.}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방교회로 내려와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신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회의를 요청했다. 그래서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베드로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고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설교함. 우리가 모두다 행위가 아닌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우리도 못 지키는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지 못했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인데, 왜 그들에게 그런 짐을 지게 하는가? 야고보(예루살렘교회의 당회장)이 아모스 111-12 성경에서 예언된 얘기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괴롭게 해서는 안된다. 헬라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읽고 그들의 문화의 모습대로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 드디어 예수를 따르는 운동이 전세계적 운동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사도적 소망 : 요엘서에 이른 비와 늦은 비의 비유처럼 만민에게 부어지는 성령이 모든 열방 가운데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그것을 소망하고 가야 한다. 이 소망은 막연한 소망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확신에 찬 소망이다.

오늘날 우리가 종말의 부흥과 사도적 소망과 사도행전의 부흥을 기대한다. 성령이 임하여 우리 모두가 열방을 향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것처럼. 복음은 나를 구원하는 능력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할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좋은 소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유롭게 된 복음을 선포할 때 베드로의 첫 설교처럼 성령이 만민에게 부어지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 얻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